스타트업은 벤처투자사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을까? 더 많은 돈을 제외한다면 훌륭한 네트워크 연결, 경영에 대한 현명한 조언 등이 벤처투자사가 스타트업에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들이다. 많은 투자사들이 스타트업에 이런 지원들을 약속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투자 후 지원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면 투자를 담당한 심사역의 개인적 수고에 따라 지원의 양과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수고로움에 기대서 투자사의 스타트업 지원이 이뤄지는 것은 불안정하다. 패스트벤처스는 그래서 회사 내에 투자 후 포트폴리오를 지원하는 일만 담당하는 별도의 조직을 꾸렸다. 그래야 초기 창업자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운영하는 창업자 인터뷰 채널 <조건있는 인터뷰>에서 박지웅 패스트벤처스 대표를 만났다. 박 대표는 이날 인터뷰에서 벤처캐피탈도 하나의 스타트업이라 여기고 투자 대상인 스타트업을 ‘고객’이라 생각, 만족할만한 상품을 만들어야 투자사들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 담당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포트폴리오 회사의 채용 공고를 공유해주는 것이, 그 스타트업의 채용에 실제로 도움이 될까?”
이런 도발적 질문을 하는 박지웅 대표로부터, 패스트벤처스가 어떤 도발적 시도를 하고 있는지를 들어봤다.
https://youtu.be/E4OLtEGBq4Q?si=OmgkoXddLS3d6RY9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회사를 회사 여러 개 하고 있는데, 패스트트랙아시아랑 패스트벤처스는 제가 대표고요. 데이원컴퍼니라는 교육 콘텐츠 회사랑 패스트파이브라는 부동산 회사도 같이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개 회사를 같이 경영하고, 운영하고 있는 박지웅이라고 합니다.
패스트벤처스는 어떤 색을 가진 투자사인가요?
한국에 벤처캐피탈이 200개 넘게 있는데 단순하게 보면 그냥 200개 중에 하나 인 거고요(웃음). 저희가 느끼기에는 제일 독특한 생각이나, 도발적인 가설 같은 것을 가지고 벤처캐피탈이라는 투자 회사를 스타트업처럼 운영하고자 하는 그런 벤처캐피탈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도발적인 시도를 하나요?
회사로서 어떤 가치를 가지려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가 쌓이거나 누적되는 게 필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여러 가지 실험이나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게 첫 번째인 것 같아요.
가장 대표적으로는 보통 벤처캐피탈 업계에서 유망한 투자 대상 업체를 발굴할 때, 구성원들의 인적 네트워크나 누군가의 소개와 추천과 식사와 술자리와 골프 등을 통해서 이제 길을 발굴하려고 하는데요. 그런 것을 전혀 안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유망한 기업을 앉아서도 발굴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저희가 지금 하려는 것 중에 가장 독특한 방식이 저희 안에서는 이걸 ‘프로덕트 기반의 접근’이라고 많이 부르는데요. 스타트업들한테 많이 이야기하는 그 프로덕트를 벤처캐피탈 업계에도 좀 도입을 해서 프로덕트 기반의 딜 소싱을 사람에 의존하는 것만큼이나 비슷한 비중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게 한 축이고요.
두 번째는, 투자 후에 포트폴리오 회사의 성장을 도와준다고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실제 그러냐는 문제인데요. 저는 벤처캐피탈들이 이야기하는 것만큼 (도움을) 스타트업들이 체감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투자 후에 스타트업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비중을 투자를 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비슷하게 가져가는 형태의 조직을 꾸리면 투자 후에 좀 “제대로 된 도움을 준다”라고 우리도 이야기하고, 상대방도 그렇게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두 가지가 제일 특징인 것 같습니다.
벤처캐피탈이 프로덕트라니, 생소해요
벤처캐피탈 회사가 스타트업들한테 “당신 회사 스케일업(scalable) 을 할 수 있느냐? 노동 집약적이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야 된다”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 질문을 그대로 벤처캐피탈들 그 자신한테 던져보면 똑같아요. 벤처캐피탈들이 사람을 하나하나 뽑아가지고 딜을 소싱하는 이 방식을 두고 “사람 계속 뽑을 거냐? 이렇게 노동집약적인 비즈니스가 진짜 좋은 비즈니스냐?”라고 물으면, 둘 다 아니거든요.
실제로 벤처캐피탈이 스타트업한테 요구하는 그 한두 개의 핵심 질문을 그들 스스로한테 던졌을 때 “예스”가 다 안 나와요. 그럼 이제 여기서부터 출발하면 되는 거라고 저희는 생각을 해서 (프로덕트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된 거고요. 저희가 느끼기에는 확실히 저희 구성원들의 인적 네트워크로 닿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이 프로덕트를 통해서 많이 만나는 것 같아요.
패스트벤처스의 가장 대표적 포트폴리오에는 어떤 곳이 있나요?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은 샌드버드 같아요. 그리고 코로나 끝나고 나서는 에어프레미아 같은 항공사에도 투자했고요. 지금같이 모두가 AI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진 않았던 2017년, 2018년 부터 출발했던 AI 스타트업들 중에서는 네오사피엔스나 올거나이즈 같은 회사가 있어요.
투자할 때 어떤 점을 가장 많이 보나요?
저희가 안에서 보통 많이 이야기하는 비유는 영화 예고편 같은 거라고 보통 얘기를 많이 해요. 영화 예고편을 보고 본편이 궁금해지면 실제 티켓 값을 지불해야 되잖아요. 그게 투자 같은 거다. 어떤 영화는 예고편을 봤는데, 예고편은 너무 재미없는데 어떤 배우 또는 어떤 감독이나 작가가 했으면 예고편이 재미없어도 분명히 본편은 훌륭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본편을 보기도 하고요.
또, 어떤 영화는 유명 배우나 작가, 감독이 아무도 없는데 그냥 예고편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본편을 봐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결심의 과정이라는 것이, 바텀업(밑에서부터 위로, 상향식 의사 결정과정)으로 하나하나 기준을 설정해서 본편을 봐야겠다고 결정하는 게 아니라, 예고편 다 볼 때 쯤 이미 마음의 결정이 대략 내려지거든요. 그거랑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스타트업의 수익과 성장, 어디에 더 가치를 두시나요?
매출과 이익이라는 거는 일단 둘 다 중요하고요. “당연히 회사는 이익을 내야지“라는 이야기도 맞는 말이에요, 맞는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출 성장성은 굉장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아주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보면 매출 100억원짜리 회사가 낼 수 있는 이익의 최대치는 100억원 이거든요. 그런데 매출 1조원 짜리 회사가 낼 수 있는 이익의 최대치는 100억원보다 훨씬 커요.
뭐가 뭐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건 아닌데, 각자의 방식으로 원하는 비즈니스를 하는 거긴 한데, 그래도 기업은 성장하지 않으면 어차피 죽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시대에는 점점 더 안정적인 매출, 안정적인 비즈니스라는 건 없어요. 그냥 더 성장하거나 아니면 그냥 죽거나. 그래서 성장의 가중치가 없으면 절대 안 될 것 같다, 매출 성장이라는 건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시장이 얼어붙었다고들 말하는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얼어붙긴 했는데요. 창업자분들이 느끼시기에는 좀 뭐 야속할 수도 있죠. 왜냐하면 제가 보기에 일단 창업팀의 양과 질은 계속 좋은 것 같아요. 좋은 분들이 계속 많이 창업을 하시는 것 같고요. 근데 투자자들이 좀 쫄아 있죠. 절반은 쫄아 있고요. 절반은 서두를 필요가 없는 시장 환경(이라는 요인이) 있어요. 이 두 개가 겹쳐서 돈이 투자가 잘 안 된다라고 창업자분들이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쫄아 있는 거는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과거에도 계속 투자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과거에 투자한 회사들 중에 회사 가치가 낮아지는 곳이 자꾸 나오는 거죠. 그러면 이게 “내가 투자를 잘 한 건가?” 생각이 들어요. 내가 과거에 100원을 투자 했는데 지금 시장에서 50원으로 평가를 받고 이러니까요. 전체적으로 유동성이 좀 줄면서 회사들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좀 낮아지는 경향이 있으니까, 이런 것이 투자자들의 심리를 상당히 위축시키는 게 하나가 있고요.
그런 한편 나머지 절반은, 과거에는 창업팀 우위의 시장이 일부 있었던 것 같아요. 창업팀이 원하는 조건을 얘기하면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그냥 그 딜을 놓치거나 하는 이지선다의 느낌이었거든요. 왜냐하면 저희가 안 한다고 해도 그 조건에 시장에 돈이 많으면 반드시 어떤 투자사는 창업팀이 원하는 조건에 투자를 해요.
근데 요즘은 시장에 돈이 좀 안 도니까 “창업팀이 제시한 조건이나 희망하시는 조건이 다소 높다고 느껴져서 저희는 그 조건에는 좀 어려울 것 같다”라고 얘기를 하면, 시장에 저희랑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투자자들이 되게 많은 거죠. 투자가 성사가 잘 안 돼서 창업팀 입장에서는 일부 조건을 하향 조정해서라도 투자를 유치 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펼쳐지는 것 같아요.
그 어떤 투자자도 쫓기듯이 무언가를 투자해야 되는 그 압박이 과거에 비해서 좀 줄어들었죠.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좀 결합되면서 결국 투자자들이 가진 돈을 잘 안 풀거나, 푸는 속도가 느린 걸로 느끼실 거고, 그게 창업팀 입장에서는 좀 시장이 차가워진 것 같다라고 느끼시는 배경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스타트업에는 VC들의 관심이 몰리는데요. 패스트벤처스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얼리스테이지 회사들은 가끔 어떤 스타트업이 투자자를 고르기도 해요. 왜냐하면 유치하는 돈의 액수가 큰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면 5억원이나 10억원을 유치하는 정도는, 시장에 그 정도를 투자해 줄 수 있는 투자자는 많아요.
저희가 느낄 때는 이분들을 기본적으로 고객이라고 생각해야 돼요. “고객들이 뭘 원하는지 알아?” 이런 질문 맨날 하는 거랑 되게 비슷한데요. “초기 스타트업의 창업자가 뭘 원해?”라고 물으면, 더 많은 돈, 훌륭한 인재에 대한 액세스, 굉장히 현명한 경영에 대한 조언 같은 것들을 이제 원하시는 거예요.
원하는 건 항상 비슷한데 이 원하는 거를 해결하려고 하는 기성 벤처캐피탈의 대다수는 투자 담당자 한 명의 시간의 N분의 1을 써서, 시간 남을 때 이 개인의 선의와 호의에 기대서 도와주라고 보통 얘기하죠.
단적으로 보면, 훌륭한 인재를 많이 소개해 주길 원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투자한 어떤 포트폴리오 회사의 채용 공고를 투자사 담당자가 페이스북에 공유해주고 “내가 포트폴리오 회사를 되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하는데요. 그런 거 보고 아무도 안 오거든요.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이거는 사실.
그래서 저희는 “투자 후 포트폴리오 지원을 전문적으로 하는 풀 타임 조직을 우린 따로 꾸렸어, 이 사람들은 투자는 안 하는데 당신들을 돕기 위한 일만 해”라고 하면 확실히 좀 다르지 않을까, 그럼 우리랑 함께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거죠.
현재 운영 중인 펀드 규모가 어떻게 되나요?
최근에 만든 펀드는 2022년 가을에 만든 펀드예요. 197억원 짜리니까 그 투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 투자를 해야겠다고 기준이 정해진 게 있나요?
투자사는 창업자에 후행하거든요. 투자사가 뭘 만들진 않아요. 창업자분들이 뭘 만들면 그걸 보고 판단하는 거죠. 저희는 어떤 투자 분야나 혁신의 출발지를 투자사가 미리 선제적으로 예측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투자사는 항상 창업자에 후행하니까요.
반면에, 굉장히 배치되는 부분일 수도 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투자사는 멍청하게 가만히 있는 거냐, 이것도 안 되거든요. 학습은 계속해요. 이런 사업, 모델 저런 사업 모델, 그리고 그 학습의 결과로 우리가 생각하는 바 등을 맞건 틀리건 계속 올리고 공유하죠.
물론 이건 바뀔 수도 있고요, 우리 학습의 결과가 투자로 바로 이어지는 건 아니예요. 기본적으로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갖는 분야라는 걸 회사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미리 정해놓진 않아요. 대신에 수많은 사업의 기회들에 대해서 창업자랑 비슷한 강도로 우리도 학습을 해야 된다라는 두 가지 방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패스트벤처스에서 투자를 받고 싶다면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IR을 해야 할까요?
수능 시험이 아니거든요. 하시는 사업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한 정도가 보통은 거의 그대로 (IR에도) 묻어나오게 돼 있어요. 사업 모델에 대한 고민이 단기간에 연습하고 맞춘다고 해서 바뀌지 않아요, 전혀. 오히려 저희 말고도 투자사는 되게 많아요. 그냥 오셔서 원래 준비하셨던 거를 준비하신 스타일대로 그냥 보여주시면 되고, 그게 저희랑 인연이 맞으면 저희가 함께 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어도 어차피 (투자사는 많으므로) 투자를 받는 것 자체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아요.
AI가 미래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요?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어서. 제가 더 좋아하는 말은 제프 베조스(아마존 창업자)가 한 말인데요.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어차피 못 맞추거든요. 안 변할 거를 잘 찾아서 5년 뒤, 10년 뒤에도 안 변할 것들이 있을 건데, 그러면 변화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걸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안 변하는 게 뭔지를 찾는 게 훨씬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발췌: https://byline.network/2024/07/22-345/?ct=t(RSS_EMAIL_CAMPAIGN)&mc_cid=8e0b730ed1&mc_eid=e180f6cc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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